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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사막의 도둑들 감상문

본 글은 자빱TV의 서리사막의 도둑들을 시청한 후 적은 글로,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 덩어리입니다.

주관적인 느낌과 감상으로만 채워진 글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 다수 있을 수 있습니다.

돌멩이 주의

2인 이상의 캐릭터 나열 시, 생활관 번호 혹은 죄수동 번호 순으로 적었습니다.

편집본만 보고 적은 글입니다.

약 15,000자 분량입니다. 길어요...

학기 종료 후 멤버십 결제를 할 예정이라 멤버십 한정 영상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재미로 읽어주세요.

 

 


자빱TV의 서리사막의 도둑들은 2021년 1월 15일에 예고편이 올라와 같은 해 5월 4일에 10일 차 4화 편집본이 올라온, 약 15주짜리의 장편 컨텐츠다. 서리사막의 도둑들은 주인공인 괴도P(=김자빱)가 1990년에 발견된 비비드 팬시 등급 다이아몬드, 사막의 심장을 찾기 위해 사막의 심장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YJK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입소와 동시에 같은 죄수동을 사용하는 B동의 재소자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힘을 합쳐 함께 교도소를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해당 컨텐츠는 10일 차 생방송이 있었던 4월 10일,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를 도배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냈다. 그렇다면 서리사막의 도둑들은 어떻게 이토록 큰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네모네모 그래픽이 사람들의 과몰입을 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종영 축하 해시와 서리사막 관련 키워드 등이 1군 아이돌의 생일 못지않게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필자는 9일 차와 10일 차를 보고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는 상태가 되었을까?

 

이유 하나, 입체감 있는 캐릭터. 서리사막의 도둑들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자신만의 설정과 서사를 가지고 움직이는,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존재로 그려진다. 캐릭터 개인의 입체감이 뛰어나다면 그 캐릭터는 필연적으로 다른 캐릭터와 마주쳤을 때 다이나믹한 서사가 발생하게 된다. 서리사막의 도둑들(이하 설사도둑)은 조연들 또한 양감이 뚜렷하여 크고 작은 서사들이 다양하게 발생하였고, 이것은 서로 얽혀 다수의 사람에게 여운을 안기는 큰 스토리로 발전했다. 설사도둑에는 김자빱을 포함한 총 여덟 명의 B동 재소자, 이들을 관리하는 두 명의 담당 교도관인 허참새와 김호랭이 등장한다. 도합 열 명의 등장인물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 호의(개인적인 감정)로 움직이는 자. 둘, 이득으로 움직이는 자. 셋, 둘 중 어느 이유로도 움직일 수 있는 자.
먼저 호의로 움직이는 부류인 박달곰, 마우수, 미연개, 독고루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박달곰은 내 사람과 네 사람의 분리가 뚜렷하지 않다. 즉 마음의 울타리가 높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해석이다. 생일날 케이크를 받고, 따뜻한 밥을 챙겨줄 사람이 있는 것이 소원이었던 만큼 박달곰은 얕은 관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울타리가 낮아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 싶다. 하지만 울타리 내부와 외부의 사람들에게 그가 각각 제공하는 감정의 깊이는 분명하게 식별된다. 자빱이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그들의 관계가 어땠고 어떠한 사건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자빱과 함께 입소한 독고루미, 하이나로 예를 들어보자. 박달곰은 두 재소자와도 좋으면 좋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려운 관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김자빱은 박달곰과의 관계에서 한 번의 변화가 있었는데, 이 기준이 되는 사건을 편의상 박달곰 식칼 사건, 박식사로 부르겠다. 박식사 당시 박달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은 김자빱과 도동개 뿐이었다. 박식사로 인해 자빱은 독방에 들어가게 되는데, 사실 자빱이 들어간 곳은 독방이자 박달곰의 heart 어딘가였을 것이다. ‘그럼 내가 들어갔어야 된다는 소리가? (3-3 13:16)’라고 말하던 그는 그래도 자신이 탑독이고 모범수이니 부탁을 해 보겠다며 김호랭을 찾아갔다. 사실상 박달곰의 입장으로는 허참새라는 목줄을 벗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김호랭이라는 목줄이 채워지는 것이었을 텐데도 그는 행동하기를 마음먹었다. 왜일까? 다른 캐릭터들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박달곰은 이번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나는 그가 다른 행동을 취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유는 박달곰 본인이 언급한 것과 같이, 자빱이 박달곰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달곰이 원자의 양성자라면 김자빱은 두 번째 원자가껍질, 그 외의 인물들은 세 번째 이상의 원자가껍질에 위치한다고 보면 된다. 단 한 명, 도동개를 제외한다면.

호의로 움직이는 두 번째 인물, 마우수. 마우수의 인생은 정으로 가득 차 있다.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의 생활도 그러했고,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그랬고, 교도소에서 버틴 이유도 같으며, 교도소에서 나가고자 결심한 이유와 끝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유, 마지막 순간에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단 하나, 그가 정으로써 움직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우수의 일생이 어땠는지, 마지막이 어땠는지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심장으로 겪어 알고 있을 테니 마우수에 관한 것은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같은 부류 세 번째 인물로는 미연개가 있다. 그가 정이 많은 인물이라는 것은 설사도둑을 챙겨 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우수 할매를 따라다니며 챙기는 것부터 교도관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점까지, 미연개의 전반적인 캐릭터 이미지는 순수하고 호의적이며 여린 쪽이었다. 마라탕을 들이붓던 속에 백탕이 들어간 느낌이랄까. 미연개의 이런 점은 마우수가 B동 재소자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시간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 미연개는 마지막까지 마우수를 붙잡고 있었던 재소자였다. 다가오는 사람을 반복해 내치는 마우수의 행동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먹한 관계를 낳게 했으며, 그나마 그를 이해하던 재소자들 또한 ‘떨떠름하지만 이해하는’ 류의 반응을 주로 보였다. 하지만 미연개는 달랐다. 속으로야 진심으로 마우수를 걱정하던 인물이 있을지 몰라도 미연개는 앞에서도 뒤에서도 마우수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호의로 움직이는 마지막 인물인 독고루미는 앞선 인물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극단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 괴도p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자처하여 감옥에 들어온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을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 ‘팬심’, ‘호의’ 등으로 일축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독고루미의 행동 기준을 논하는 지금은 괴도p와의 관계는 최대한 배제하도록 하겠다. 독고루미는 류도롱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던 인물 중 하나다. 그 이유가 괴도p의 행동을 카피하고 싶었던 것인지, 순전한 그의 성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그가 류도롱에게 반복적으로 다가갔던 것은 사실이며, 이는 그가 인정이 깊은 인물인 듯한 연출 정도는 충분히 내고 있다. 독고루미와 허참새의 상담 시간에 독고루미는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허참새가 먼저 독고루미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기 때문이지, 따로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그의 태도가 변화한 것이 아니었다. 허참새에게 나잇값을 못한다 등의 발언을 하기는 했으나 허참새가 먼저 독고루미를 자극하지 않았다면 평소의 맹한 모습으로 상담 시간이 마무리될 수 있었을 테다. 즉 그의 행동은 본인이 느끼는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이득으로 움직이는 부류에는 도동개, 하이나, 허참새가 있다. 먼저 도동개는 9회차까지도 자신의 실속을 챙겼다. 사막의 심장을 훔치라는 의뢰로 YJK 교도소에 입소하고, 실제로 그것을 훔치는 것에 성공했다. 빠른 눈치와 능청스러운 연기로 허참새의 레이더망을 벗어나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었고, 말할 것과 말하지 않을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박달곰에게도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진짜 이유 혹은 사막의 심장과 관련된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빱이 보석 감정을 요구했을 때도 순발력 좋게 그것이 진짜라는 가짜 감정을 내어주었다. 눈치 빠른 도동개는 자신이 대뜸 독방으로 끌려갈 때 독고루미의 상담 내용과 자신이 독방으로 끌려가는 이유를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는 이유를 모른다는 듯 행동했고, 독방에서 탈출한 이후에도 타 재소자들에게 관련된 언급은 일절 삼갔다.
같은 부류 두 번째 인물은 하이나. 그는 교도관에게 같은 동 재소자들의 정보를 파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만약 그 사실이 자빱에게 발각되지 않았다면 하이나는 탈옥 계획을 설립하는 와중에도 이 정보를 허참새에게 파는 것이 이득일지, 이들을 따라 탈옥을 강행하는 것이 이득일지 계산했을 것이라고 본다. 감옥을 탈출하고 싶은 1차원적 욕망이 탈옥 계획에 가담한 이유이기는 하겠지만 상황이 그렇게 된 차에 허참새에게 정보를 팔아 생기는 뒷감당을 하는 것보다는 이들과 탈옥을 시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편집본 기준, 하이나는 류도롱과 1대1 대화를 나눈 적 없거나, 아주 드문데, 그 이유 또한 교도소 내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력을 잡고 있는 박달곰과 도동개가 그와 대화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있으니 이득을 따지는 그로서는 류도롱에게 말을 걸 이유가 없었을 테다.
이득으로 움직이는 마지막 부류는 허참새다. 허참새는 특별한 서술을 붙이지 않아도 모두가 본 의견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원해서 사막의 심장을 훔쳤고, 들키지 않기 위해 마우수를 팔았으며, 자신의 힘을 저지하는 소장과 김호랭을 처리했다. 교도소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그것을 방해하던 자들을 거리낌 없이 처리할 만큼 그 위치를 즐겼으면서 죽음이 눈앞에 들이닥치자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본인에게는 상당히 굴욕적인 일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은 김자빱, 류도롱, 김호랭이 있다. 김자빱은 허참새에게 아부를 떨며 줄을 타려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도동개를 판 독고루미의 행동을 타이르기도 했다. 설사도둑의 유일한 플레이어인 만큼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스트리머인 김자빱이 완전히 호의로써 움직이거나 이득으로써 움직였다면 시청자들은 자빱에게 온전히 몰입할 수 없었겠지.

두 번째로 류도롱은 3일 차부터 등장했고, 9회차에서 퇴장한 인물에 소극적이고 비밀스럽고 뒤편으로 빠져있는 포지션이었던 만큼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언행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다만 류도롱은 ‘어제오늘 보니까 그쪽 성격이 나랑 비슷한 것 같아서 (4-1 21:50)’라며, 김자빱에게 전달한 바 있다. 김자빱은 겉으로는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내고 이득을 취하려는 모습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을 텐데, 류도롱이 직접적으로 그 말을 전하고 또 그것이 과거 형을 띄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류도롱과 김자빱의 캐릭터 성이 닮아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어느 것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인물은 김호랭. 그가 YJK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순전히 괴도p를 잡고 싶다는 그의 개인적인 목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허참새에게 붙잡혀 지하실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김자빱을 만나자 그는 도망치라고 말한다. 탈옥 계획에 동참한 것과 같이 묶어, 그 이유를 생존 욕구라고 보고 싶다. 자신의 야망과 목표와 정반대가 되는 언행을 이어간 것은 그때만큼은 살고자 하는 본능이자 살아야 한다는 이성적인 판단, 양쪽에 해당한다.
크게는 세 부류, 세부적으로는 각각의 이유와 성질을 띠고 있는 캐릭터들이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맞물리는 이해관계 속에서 각 캐릭터는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박달곰과 류도롱, 김자빱과 도동개를 큰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먼저 박달곰과 류도롱은 두 인물이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3일 차부터 앙숙과도 같은 모습을 계속해 보여왔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류도롱을 계속해 내치던 박달곰의 행동 원인이 자기방어가 아닐까 싶다. 인물의 특성상 죄책감 또한 큰 몫을 하고 있겠지만, 박달곰은 류도롱을 무서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류도롱을 독방에 내려가게 했고, 자신은 허참새에게서 발을 뺐다. 그런데 류도롱이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만약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새 재소자들에게 류도롱이 언급하게 된다면 자신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자신이 허참새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더불어 도동개를 지킬 수도 없어진다. 이 모든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류도롱과 새 재소자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류도롱은 뻔뻔한 박달곰의 태도에 계속해 화가 날 수밖에 없고. 이 관계가 회복된 것은 탈옥 계획을 함께 세우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박달곰은 기회가 생기자마자 류도롱에게 사과를 했다. 이 행동은 류도롱을 계속해 배척하려 들었던 박달곰의 행동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류도롱의 죽음은 박달곰에게 자신이 사과해야 할 것, 이야기하고 풀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고 직접적으로 발설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죄책감 때문에 날을 세우지 않고, 두려움 때문에 연거푸 상처를 주는 행동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이 잘못한 게 있다고 정확하게 짚어 발언하며 둘의 관계는 결론이 난다.

두 번째로 김자빱과 도동개는 사막의 심장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허참새와 마우수 또한 사막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으나 새롭게 사막의 심장을 훔치려는 자와 이미 그것을 훔친 채 탈옥의 기회만 엿보는 자의 관계성은 유달리 라이벌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도동개는 마지막까지 본인의 이득을 최대한 취하려고 했으나 실험실에 다녀온 뒤로는 달라졌다. 도동개는 사막의 심장을 훔쳤다는 이유로 그 실험실에서 죽을 운명이었으나, 그곳에서 자신을 구해준 게 다름 아닌 김자빱이었다. 생명 앞에서 보석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니겠나. 도동개는 그 사건을 기점으로 사막의 심장을 완전히 포기하고 김자빱에게 가짜 사막의 심장을 달라고 한다. 이득으로 움직이던 그가 김자빱에게 한 걸음을 양보한 것이고, 이것은 도동개 또한 완전히 탈옥 패거리에 녹아들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게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느껴졌다.

 

돌멩이가 아닐까 싶지만, 굳이 언급하고 싶은 것은 김자빱과 류도롱의 관계성과 엇갈리는 운명이다. 류도롱은 김자빱에게 B동 재소자들과 친하게 지내 좋을 것이 없다는 식의 언질과 함께 김자빱과 본인의 예전 모습이 닮았다는 언급을 반복했다. 공교롭게도 이 둘의 방은 마주 보는 형식인데, 김자빱과 류도롱은 초기의 성격은 비슷했으나 이후 완전히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암시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거울은 사물과 거울에 맺히는 상이 대칭을 이루고 있지만 YJK 교도소는 거울이 아니라 교도소다. 닮았으나 끝까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처럼 느껴져 괜스레 눈물 버튼이 눌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각 재소자의 방 배치를 대칭을 이루고 있는 B동의 형태를 이용한 게 아닌가 싶다. 호의로 움직이는 박달곰과 미연개, 이득으로 움직이는 도동개와 하이나는 서로 방이 마주 보고 있지만, 다른 재소자들과 성질이 비슷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마우수와 독고루미는 빈방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김자빱과 류도롱의 방이 마주 보고 있는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라고 우겨도 괜찮지 않나 싶다.

 

이 길고 장황한 캐릭터 관련 본문을 끊어줄 인물은 바로 독고루미다. 독고루미는 가진 것이 많은 가정에서 태어나 YJK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부유한 삶을 살았다. 사실 YJK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것도 괴도p를 만나기 위한 자신의 선택이었으니 교도소 지하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어려움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무관하겠다. 이 독고루미라는 캐릭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는 것과, 단순하지만 도덕성의 결여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필자는 뼛속까지 오타쿠에 예전에는 케이팝 팬덤에 몸 담근 적이 있다. 그래서 독고루미의 블로그(https://dearthiefp.creatorlink.net/forum/view/450208) 첫 포스트를 읽어보았을 때 그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필자는 아이돌을 파고 독고루미는 도둑을 팠지만, 대상이 다르다고 감정이 다른 것은 아닐 테니.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독고루미의 감정에 이입하기 어려워지면서 이것은 팬심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대상을 향한 맹목과 절대적인 존재를 향한 신앙이라고까지 느껴졌는데, 어떤 것 하나 확실하지 않으면서 괴도p로 추정되는 사람을 따라 YJK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점이 가장 큰 증거가 아닐까 싶다. 독고루미의 행동 기준은 모두 괴도p, 김자빱이었고 설사도둑 후반부가 되어서야 자신의 정체를 어쩔 수 없이 밝힌 것 또한 김자빱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만일 김자빱이 독고루미를 의심하거나 거리를 두지 않았다면 독고루미는 김자빱이 탈옥을 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aboutP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을까 싶다. 함께 탈옥을 하고 교도소 밖에서 사실 제가 당신의 추종자 aboutP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나도 아이돌을 팔 때 오지게 성공해서 뫄뫄님 사실 제가 뫄뫄님 팬이었어요. 라고 말하는 미래를 꿈꿨었다. 간지나고 멋지잖아. 아무튼 이렇게 모든 기준이 괴도p인 독고루미가 마지막에는 어머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알고 그것에 크게 충격받음과 동시에 괴도p를 꺼내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 깊었다. 이런 걸 알고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 꺼내줄 테니 가만히 있어라 등의 라고 말하던 독고루미는 김자빱의 약속을 받아내자마자 교도소를 빠져나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독고루미가 도덕성이 결여된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 치의 티 없이 100% 자신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일 뿐. 독고루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뿐이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도 괜찮은 뒷배경을 운 좋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한 막무가내와 무식하다 싶을 만큼의 추진력이 발생했을 뿐이지 오히려 어떤 때도 타지 않고 순수한… 정말 어린 아이와도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도덕적이어질 수 있다. 자신만은 살 수 있었을 텐데 그 손을 뿌리치고 김자빱을 구하러 온 것이 증거가 되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고루미는 과거 일기도, 비밀 일기도 없는 유일한 캐릭터였는데 그것 또한 숨겨야 할 것이 없는, 앞과 뒤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이면성을 가지고,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고 숨기는 어떤 부분이 존재했으나 독고루미만큼은 그것에서 자유로웠던 것이다. 자신이 에피오네 회장의 딸이라는 걸 일기장에 쓸 이유도 없거니와, 독고루미의 성격상 그래! 엄마랑 약속했으니 말 안 해야지! 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이유 하나, 복선, 감정선, 개연성,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스토리. 서리사막의 도둑들은 굉장히 높은 퀄리티를 구사하고 있는데, 기억도 안 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고, 하루에 여섯 시간을 어렵지 않게 애니메이션에 투자했던 오타쿠 1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키다 못해 후유증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먼저 앞서 약 8,000자를 들여 이야기한 캐릭터 개인의 변화와 그로 인한 시너지는 스토리에 흥미진진함을 불어넣고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예를 들자면 순식간에 돌변한 마우수, B동에 서서히 녹아들던 류도롱 등이 있겠다. 설사도둑의 모든 캐릭터는 뛰어난 입체감과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인물 하나의 변화가 확실하게 전달이 된다. 하지만 그 많은 변화와 액션들은 단순한 일차원적 자극에 지나지 아니하고, 설사도둑의 주된 메타포를 계속해 관통하며 스토리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정확한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이로 인해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과 몰아치는 복선, 이어지는 반전 속에서도 설사도둑은 자극적이거나 그래서 이게 뭐지? 싶은 감상, 소위 말하는 ‘갓캐가 망장르에 갇혔어요’ 사태가 발생하지 않고,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한 창작물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사람들이 설사도둑에 온전히 몰입하고, 어떠한 단서와 진상이 나타나도 억지스럽지 않다고 느껴진 것은 기억의 보부상 시스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의 시작 부분에 ‘사실 괴도p는 과거에 어땠고 저땠고 같이 자라던 백화랑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하며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고, 등장하는 인물이 제한적인 만큼 이후 밝혀질 스토리들에 대해 너무 쉽게 힌트를 제공하는 셈이 되어버린다. 기억의 보부상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괴도p의 과거 또한 스토리 중 밝혀지는 단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그것들을 천천히 밝혀냄으로써 인물 관계도와 여러 상황, 복선 등이 억지스럽지도, 너무 임팩트 없지도 않은 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게 된다. 말하자면 주인공의 과거 서사가 스토리의 진행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다. <교도소>라는 제한적인 공간 속에서 타 캐릭터의 과거를 전달하는 방식 또한 기억의 보부상을 통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는데, 특정 조건이 만족되어야 해당 캐릭터의 과거를 볼 수 있고, 그날그날 과거를 확인할 수 있는 캐릭터가 달라 어느 한 캐릭터도 놓치지 않고 충분한 입체성과 모든 행동에 정확한 개연성이 부연 되는 효과가 발생하였다.
설사도둑의 분위기는 3화를 기점으로 크게 바뀌는데, 이 때문에 1화, 2화는 허위매물이 아닌가 싶은 의견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은 진지하지 않게 하는 말이겠지만 복선과 입체감 등을 언급한 김에 함께 이야기해보겠다. 분위기 자체로만 따지자면 1, 2일 차와 후반부의 분위기, 내용이 너무도 달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고 본다만, 사실 그 두 회차는 고의적인 허위매물보다는 인물의 감정선, 서사 전개상 자연스럽게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도소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두 교도관인데, 1, 2일 차의 김호랭과 3일 차부터의 김호랭을 살펴보자. 1, 2회차의 김호랭은 허참새와 트러블도 없었을뿐더러,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재소자들을 인솔하고, 해야 할 일을 안내해주는 것이 전부였을 뿐. FM이라는 성향이 도드라지고 느긋한 허참새와 이해관계가 조금 엇나가는 경우가 있었어도 큰 문제는 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허참새가 원칙을 중요시하는 김호랭의 행동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회차에서 김호랭이 김자빱을 독방에서 꺼내주었던 행동은 이전에 허참새와 의견이 분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허참새에게 주었을 것이다. 불법 물품 소지의 경우 독방행이 아니라 물건 압수가 우선이다. 같은 이유로 김자빱은 교도소 도면을 가지고 있었으나 독방에 끌려가지 않고 지도만을 압수당했다. 하지만 박달곰은 독방에 끌려갈 위기에 처했었는데 이유는 모두 허참새가 꾸민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두 보고 있었던 김호랭은 나서지 않았고, 이후 식사 시간 등에도 저건 독방 갈 일이 아니지 않느냐 등 허참새와 컨택하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김호랭 또한 이 모든 사건이 허참새의 의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김호랭이 갑자기 김자빱을 독방에서 꺼내왔으니 교도소장까지 처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고, 그것을 달가워하던 허참새가 그의 행동을 어떻게 느꼈을지는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다. 4-4는 같은 이유로박달곰을 좋지 않게 보고 있었던 허참새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김호랭은 미리 정비해 놓은 교도소 내 원칙과 규율을 무시하며 자신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허참새의 방식에 불만을 두지 않았을 수 없는데, 독방 사건 이후로 허참새의 개입 혹은 선 넘는 행동이 잦아지며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생각한다. 결국 3일 차부터 전환되는 분위기와 보이기 시작하는 교도관들의 난폭한 측면은 1, 2일 차=허위매물이 아닌, 캐릭터의 입체성과 중요하게 여기는 것, 목표를 손에 얻기 위해 움직이는 방식(허참새-목적을 이룰 수 있게 판을 만들고, 흔드는 편, 김호랭-목적을 이룰 수 있게 가장 합리적이고 근거 타당한 방법을 사용하는 편. 예로 김자빱을 꺼낼 기회를 엿보다 박달곰의 개입이 이루어지자 행동했던 것이 있다.) 등을 보여주기 위한 밑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설사도둑에는 수많은 상징물과 복선이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적을 자신이 없는 관계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죽음 앞에서 충성하라에 대해서만 서술해보겠다.
먼저 ‘죽음 앞에서 충성하라’는 왕국과 에피오네를, 트롤리의 딜레마는 설사도둑의 스토리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중 죽음 앞에서 충성하라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목이라길래 한평생 모님의 권유로 기독교인으로 생활했던 나로서는 지나칠 수 없었다. 찾아보니, 본 구절은 요한계시록 2장 10절의 말씀인 것을 확인, 동시에 9장과 11장의 내용을 읽게 되었다. 아래는 요한계시록 2장 9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이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먼저 이미 지나간 과거를 서술한 다른 파트들과 다르게 요한계시록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서술한 부분으로, 그 내용이 상당히 난해하고 어려워 신학을 전공하신 목사님들 또한 쉽사리 설교의 주제로 삼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어려운 말들 때문에 사이비에도 쉽게 사용이 되는데, 자신의 입맛대로 성경의 내용을 곡해해 퍼트리기 쉬운 부분이 요한계시록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굳이 9절과 11절의 내용을 함께 첨부했는지, 나에게는 2장 9절부터 11절의 말씀이 설사도둑과 관련해서 어떻게 들렸는지 적어보겠다. 현대의 책 대부분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읽고, 13p를 읽고 14p를 읽듯 성경 또한 다를 게 없다. 1장은 2장 전의 말씀이며, 9절은 10절 전의 말씀이다. 그러니 9절을 과거, 10절을 현재, 11절을 미래로 취급해볼 수 있는데, 9절은 재소자들 사이에 끄나풀 같은 것을 심어두기 위하여 재소자를 현혹하는 구절, 10절은 그렇게 실험체가 되어버린, 될 예정인 모든 재소자에게 말하는 구절, 11절은 다시 재소자들을 탐색하며 끄나풀 삼을 사람을 찾는 구절처럼 느껴졌다. 핵심인 10절의 내용만 부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고난=실험, 마귀=에피오네, 왕국, 허참새 등,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독방 가서 실험당한다,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실험 시작부터 끝(성공 혹은 실험체 사망), 죽도록 충성하라=왕국에 죽도록 충성하라, 즉 실험으로 너의 충성을 증명하라, 생명의 관=실험 성공체들이 들어가는 서리방의 서리관

처럼 들렸다. 요한계시록을 인용한 것은 YJK 교도소가 그동안 어떻게 돌아갔는지, YJK 교도소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아 서리 내림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필 요한계시록인 것마저 에피오네, 왕국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수업을 듣다 머리를 깰뻔했다. 참느라 고역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유 하나,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설사도둑의 주제는 초반부터 엔딩까지 유구하게 등장했던 ‘트롤리의 딜레마’로 보인다. 트롤리의 딜레마는 한 명을 구할 것인가, 다섯을 구할 것인가가 주된 질문이고, 설사도둑에서는 한 명과 모두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이 적잖게 나온다. 하지만 설사도둑의 진짜 주제가 트롤리의 딜레마일까? 내가 생각하는 설사도둑의 진짜 주제는 개인의 호의와 연대, 서로를 향한 믿음이 집단이 목표를 이루는 것에 어디까지 기여할 수 있는지로 보인다. 앞서, 설사도둑의 캐릭터는 크게 세 가지로 분리된다고 말했다. 그 세 부류는 우선적으로 두고 있는 기준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피해를 보거나 분열이 일어나기 쉽다. 하지만 설사도둑의 모든 캐릭터는 탈옥이라는 목적에 마음을 맞추었고, 결과적으로 탈옥에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하기는 했으나 YJK 교도소를 벗어난다는 목적 자체에는 달성한 셈이다. 어느 한 명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마음을 온전히 모으지 않았다면 탈옥 준비, 실행, 그 이후의 대처까지 그려나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도둑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김자빱에게 선택권을 쥐여준다. 하지만 김자빱의 말대로 그것은 선택지를 가졌다고 볼 수 없다. 그들이 진정 어떠한 선택권을 가지는 방법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며, 그 환경은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방법을 떠올리며 천천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사막의 심장은 마우수의 일평생이고 신념이다. 마지막 선택 분기점에서 사막의 심장을 허참새에게 넘겨주었다면 그것은 마우수의 평생을 져버리는 일이 된다. 위성 전화는 류도롱의 마지막 희망이다. 위성 전화를 넘겨주는 것은 류도롱의 신뢰, 희망, 믿음을 져버리는 것이 된다. 김자빱은 누구도 버리지 않았다.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설령 그것이 본인의 죽음을 낳는 일이 되더라도 말이다. 트롤리의 딜레마를 사용해 계속 어떠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분위기를 조장했으면서 마지막에는 주인공의 입으로 트롤리의 딜레마를 지적하게 한다. 그리고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게 된다. 설사도둑은 다수와 소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선택한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달리는 열차를 멈추려 한다. 설령 그 과정이 완벽하지 못하고, 빠르지 못해 사상자가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끝내 열차는 멈춘다.


설사도둑은 자빱사단의 능력을 보여준 뛰어난 컨텐츠라고 생각한다. 자빱TV가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할지, 언제까지 나아갈지, 얼마나 큰 열차를 자유자재로 다룰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소수 혹은 다수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희생당할 이유는 없으니까. 우리는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다. 사실 더 *다루고 싶은 부분들이 정말 많았지만… 오늘 저녁에 시작될 새 컨텐츠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고, 기력과 시간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기 시작한 관계로 이만 글을 마무리한다.

 


*허참새와 김호랭이 재소자들에게 재소자와 본인의 위치를 상기시킬 때 쓰는 방식(허참새는 사적에서 공적;짬바니>8253, 김호랭은 공적에서 사적;김자빱 재소자>김자빱)과 여기저기 숨어있는 복선 등